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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의 문화산책] 책을 사랑한 선비들의 그림 '책가도'
(사진=픽사베이)

[한국정경신문=박은정 칼럼니스트] 우리에게 익숙한 ‘담헌’홍재용, ‘연암’박지원, ‘여유당’정약용, ‘완당’김정희의 호는 그들이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 교류하던 서재의 이름이었다고 한다.(박철상, <서재에 살다>)

 서재의 이름과 호가 같다는 것은 곧 그들이 얼마나 책을 많이 읽고 사랑했는지 가늠하게 한다. 그들의 사랑채나 공부방이던 서재에는 책 외에 또 무엇이 있었을까?
그 당시 유행하던 책가도 그림을 보면 당시의 문인들의 골동 수집과 감상의 취미가 어떠했는지, 또 서재를 어떻게 장식했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우리말로 ‘책거리’라고 하는 ‘책가도’는 높게 쌓아올린 책더미나 일상용품을 적절히 배치한 정물화 풍의 그림으로 주로 서실 벽에 바르거나 병풍으로 만들었던 전통 장식화 및 민화로 분류된다. 그림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중국의 다보각경을 본떠서 조선에 걸맞은 형식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이 18세기 후반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약 200년간 널리 유행했다고 하니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경우라고 한다.
 
  책가도 그림의 주된 대상물은 책이지만 책과 함께 하는 문방사우, 즉 붓, 먹, 종이, 벼루를 비롯하여 향로, 문갑, 부채, 도자기, 청동기, 화병, 화분 등의 기물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이 그림에서는 선비의 여가생활과 관련된 술병, 술잔, 담뱃대, 담배함, 악기, 바둑판, 시계, 안경 등도 등장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사치품도 보인다.

  이 책가도는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하게 되는데 그 시작은 1719년 정조가 어좌 뒤에 있던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책가도 병풍을 세우면서다. 이것은 글과 학문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정조의 의지 표명이었다.

 ‘일월오봉도’를 치운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이 일정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는 ‘일월오봉도‘는 왕권을 상징하고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이런 뜻을 가진 병풍 대신 책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가도 병풍을 세웠다는 것은 신하들에게 공부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왕이 책가도를 병풍으로 치자 이 그림은 이내 사대부들에게 유행이 되었다.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는 감히 병풍으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책가도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하기도 했던 이 책가도는 아들에게는 면학에 정진하고 적극적으로 글공부를 하라는 암시였고, 급제를 바라는 선비에게는 일종의 부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책가도는 19세기 조선 말기, 양반과 평민으로 나뉘던 반상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더 유행했다. 돈을 번 중인들이 양반 호적을 사면서 책가도를 탐내었기 때문이다. 문자와 책을 즐기는 것이 사대부 양반의 기본일진대 가짜 양반들은 그림으로라도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조 때 책가도는 장중하고 중후했지만 이 무렵의 책가도는 색감이 화려해지며 더 장식적으로 변한다. 전통 그림에는 없는 원근법과 명암까지, 화사한 색깔과 자유분방한 구도의 책가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책가도는 가장 활발히 거래되던 예술품으로 부와 지식과 명예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 ‘책가도’와 한문자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문자도’가 지난 6월에 시작된 예술의 전당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다.

정조가 어좌 뒤에 설치했던 병풍이나 김홍도가 그린 책가도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서울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50여점 중 궁중화원 이형록의 책가도 병풍(국립박물관 소장) 등 30여점이 미국 전시를 시작했다고 한다.

  9월부터 12월까지의 뉴욕 전시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년까지 미국 순회전을 가지고 내년 4월에는 캔자스대학교에서 책거리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책장에다 책과 여러 가지 종류의 문방구류, 골동품 및 아름다운 기물들을 넣어 그림으로 표현한 책가도는 세계에서 책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인 것임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했다. 책장에 책들이 쌓여있는 그림이 인기였다니 역시 문화민족이 아니겠는가.

한국정경신문 박은정 칼럼니스트  pj183197@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정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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