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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의 문화산책] 추억 속 가을, 기차여행
(사진=픽사베이)

[한국정경신문=박은정 칼럼니스트]

이별을 준비하며 기다리던 기차에 설레임으로 오르고
좌석 번호를 찾아 앉은 ‘창가’의 안도감에 젖을 때
마침내 기차는 기적 소리를 울리고
한강철교를 뒤로 하면
남겨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차창에 부딪친다.
도란도란 햇살 쬐는 마을의 지붕들이 스쳐 지나가자
작은 간이역마다 각색의 코스모스들이 온몸을 흔들어 안녕을 고하고
짙게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터널 지나 강물이 보일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에 가슴이 아린다.

이것이 나의, 아니 우리 모두의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차 여행이다.
 
우리나라 기차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경인선(노량진-인천 구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열렸다. 그 다음날인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낸다.

“화륜거의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한다.”

화륜거란 불을 내뿜는 수레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기차를 처음 본 충격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는 33.2km다. 평소에 12시간 걸리던 이 거리가 채 1시간이 걸리지 않게 된 것이다.

1825년 영국이 세계에서 최초로 철도를 개통한 후 동양에서는 세 번째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먼저 철도가 들어왔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치가 풀리면서 1876년에 개항된 부산과 원산, 인천의 제물포항은 당시 열강들이 물밀듯 들어온 곳이다. 특히 제물포는 각국의 상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국제도시가 되었으므로 여러모로 철도가 필요했다.

1896년 프랑스가 처음으로 철도부설권을 요구했지만 대한제국은 민족 자본으로 직접 철도를 개설하려 했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미국이 받았다가 결국엔 일본이 넘겨받았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 전부터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여 이후 철도는 식민지 조선의 수탈의 도구로, 일본의 대륙 진출의 통로가 되었다.

1946년에는 우리 기술로 만든 해방자호가 서울-부산 구간에 운행을 시작했다. 증기 기관차는 디젤기관차에 밀려 1967년에 운행을 중단했다. 현재는 디젤 기관차와 전기 기관차가 함께 운행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KTX로 2시간 30분이다.(코레일 홍보 참조)

“나는 3등 열차 창가에 턱을 고이고 앉아
스치고 지나가는 풍광에 눈을 뗄 줄 모른다.
기차는 무정하게 저녁 들판을 달리고,
나는 혼자 레일 위에 추억을 깔며 달린다.“(엄원용, ‘시골 기차를 타고’부분)

누구에게나 기차여행의 추억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터, 그래서인지 이 가을, 기차로 떠나는 테마여행이 인기다.

떠날 수 없다면 그리스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발차가 부르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어보시라. 또는 그라나도스의 ‘오리엔탈’을 들으며 추억 속의 가을을 여행해볼 수도.

한국정경신문 박은정 칼럼니스트  pj183197@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정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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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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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리엘 2016-10-26 13:34:59

    앞으로 서울ㅡ부산 30분 걸리는 꿈의 고속철도 나온다고 하니 철컹철컹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 펼쳐지는 풍경을 벗삼아 마음을 달래보는 낭만도 과거가 될 날이 올런지요..   삭제

    • 안선미 2016-10-25 13:26:20

      기차는 왠지 낭만적인것 같아요 대학시절만 해도 무궁화가 제일 빠른기차여서 고생해서 고향을 다니곤 했는데 혼자 기차에 올라 단풍을 보고 싶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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